독도가 역사적으로 우리땅인 이유

분류없음 2006/08/04 21:25

일본이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편입한게



1905년인데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고 국권을 빼앗은후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편입한후 지금껏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는건



일본인들의 영토욕에 대한 후안무치한 이기주의라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나라가 독도의 주인이라는것은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편입된게 서기 512년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인 512년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한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천년이상  아니 그이상 점유해온 나라를 제치고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요



 



*신동국여지승람* (중종25, 1531년), 강원도 우산도.울릉도조






 






 


굳이 신라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미 조선세종14년에 편찬된 지리지에만 보더라도 우산 무릉 두섬이



울진현 정동쪽 한가운데 있다고 니와있을뿐 아니라




 1531년  중종 26 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만 보더라도 "우산도, 울릉도 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 원문을 보면



世宗實錄 卷153 地理誌 江原道 三陟都護府 蔚珍縣



세종실록 권153 지리지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우산무릉이도, 재현정동해중. 이도상거불원, 풍일청명, 즉가망견.



 



▶우산과 무릉, 두 섬이 현의 정동방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가 있다.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地方百里, 恃險不服,



신라시, 칭우산국, 일운울릉도. 지방백리, 시험불복,



 



▶신라 때에 우산국, 또는 울릉도라 칭하였다. 땅 구역은 1백 리로,



 (사람들이) 험한 지형에 의존하여 복종하지 아니하므로,



 



 



智證王十二年, 異斯夫爲何瑟羅州軍主, 謂于山人愚悍, 難以威來, 可以計服,



지증왕십이년, 이사부위하슬라주군주, 위우산인우한, 난이위래, 가이계복,



 



▶지증왕 12년, 이사부가 하슬라주 군주가 되어 이르기를, "우산국 사람들은 어리석고



사나와 위엄으로는 복종시키기 어려우니, 가히 계교로써 하리라." 하고는,



 



 



乃多以木造猛獸, 分載戰船, 抵其國詐之曰, 汝若不服則即放此獸, 國人懼來降.



내다이목조맹수, 분재전선, 저기국사지왈, 여약불복즉즉방차수, 국인구래항.



 



▶나무로 맹수를 많이 만들어, 전투선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에 가서 속여 말하기를,



 "너희들이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짐승을 풀어서 잡아먹게 하리라."하니,



그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와서 항복하였다.



 



 



高麗太祖十三年, 其島人, 使白吉土豆獻方物.



고려태조십삼년, 기도인, 사백길토두헌방물.



 



▶고려 태조 13년, 그 섬 사람들이 백길,토두로 하여금 방물을 헌납하게 하였다.



 



 



毅宗十三年, 審察使, 金柔立等回來, 告島中有泰山, 從山頂向東行 至海一萬餘步



의종십삼년, 심찰사, 김유립등회래, 고도중유태산, 종산정향동행 지해일만여보



 



▶의종 13년, 심찰사 김유립 등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섬 가운데 큰 산이 있는데,



산꼭대기에서 동쪽으로 바다까지 1만여 보,



 



 



向西行一萬三千餘步, 向南行一萬五千餘步, 向北行八千餘步,



향서행일만삼천여보, 향남행일만오천여보, 향북행팔천여보,



 



▶서쪽으로 1만 3천여 보, 남쪽으로 1만 5천여 보, 북쪽으로 8천여 보가 되고,



 



 



有村落基址七所, 或有石佛像鐵鐘石塔, 多生柴胡蒿本石南草



유촌락기지칠소, 혹유석불상철종석탑, 다생시호호본석남초



 



▶촌락터가 7군데 있으며, 간혹 석불·쇠종·석탑이 있고, 시호·호본·석남초 등이 많이 난다."



하였다.



 



 



我太祖時, 聞流民, 外入其島者甚多, 再命三陟人金麟雨, 爲按撫使



아태조시, 문유민, 외입기도자심다, 재명삼척인김인우, 위안무사



 



▶우리 태조 때, 유민들이 그 섬으로 도망하여 들어가는 자가 심히 많다 함을 듣고,



다시 삼척 사람 김인우를 명하여 안무사로 삼아,





 



 



刷出空其也, 麟雨言, 土地沃饒, 竹大如柱, 鼠大如猫, 桃核大於升, 凡物稱是



쇄출공기야, 인우언, 토지옥요, 죽대여주, 서대여묘, 도핵대어승, 범물칭시



 



▶사람들을 쓸어 내보내 비웠는데, 인우가 말하기를, "토지는 비옥하고,



대나무는 크기가 기둥 같으며, 쥐는 크기가 고양이만하고, 복숭아씨가 됫박만 한데,



모두 물건이 이와 같다." 하였다.



 



우리의 역사에서만 독도가 우리땅임을 나타나고 있는것이 아니고



일본의 역사서에서도 다음과 같이 독도하 한국땅임을 나타내주는



자료가 있음을 일본인들도 알고있지요



 





 1667년 일본인이 편찬한  은주시현합기와  



1869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편찬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1876년 일본 내무성에서 만든  태정宮 결정서,



1876년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朝鮮東海 岸圖>,



1905년 동경박물관에서 펴낸 <일본전쟁실기>,



1936년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나온 <지도구역일람도> 등의 자료 등에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밝혔다.



 



일제의 침탈을 받고 고통받던 그때 



독도를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도서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편입했다는 사실이 있는데



이는 일본이 자기땅이라고 편입한 1905년보다 또 5년이 앞선것을 역사적으로



알수있는 자료입니다..



 




 



또한



우리가 잘알고 있는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선언을 보면



폭력과강요에 의해 취득한 모든 영토를 돌려준다는 구절이 있으며,



일본은 포츠담선언을 통해 카이로선언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선언하였으므로,



폭력과 강요에 의해 빼앗겼던 독도를 일본은 당연히 포기해야 하지요



강압적으로 나라를 빼앗고 자신들이 침략했던 시기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오히려 그시기에 잠까 점유했던 섬을 자신들의 땅이라 우기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게 일본이지요



 



참고로 독도라는 지명을 쓰게된 기원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 북도에 편입되었고, 2000년 4월 7일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상 주소를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산1~산37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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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gtrrtu 2008/10/13 15:15 PERMALINKMODIFY/DELETE REPLY

    truu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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